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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난반사 - 누쿠이 도쿠로



* 생각해 보니 제가 지난 주엔 글을 안 썼더군요 -_- 여름이라 그런 건지 자꾸 정신을 놓곤 합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 [난반사]를 읽었습니다. 누쿠이 도쿠로는 [우행록]으로 처음 접했던 작가인데 그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띄어서 예정에도 없이 대출했습니다. 470쪽 정도 되는 분량인데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가 금방 읽었어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이나 감정들로 가득 찬 소설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나와 가족을 비롯해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면면들을 옮겨 놓은 듯 친숙합니다. 읽다 보면 '이런 사람들로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거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예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한두 가지씩 문제점, 골칫거리, 컴플렉스, 결핍, 못된 마음, 상처 등등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그것들이 너무 사소하거나 차마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것들이라 그저 자기 안에 쌓아두고 있을 뿐입니다. 남들이 안 볼 때 규칙을 어긴다든지 편법을 쓴다든지 험담을 한다든지 하면서 그럭저럭 해소하고 있긴 한데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은 긴장감이 느껴져요.


예를 들면 대학생인 안자이 히로시는 몸이 유난히 약해요. 걸핏하면 감기에 걸리고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며칠씩 끙끙 앓기 때문에 감기 기운이 느껴지면 재빨리 병원에 가야 합니다. 건강한 보통 사람들은 감기 가지고 뭐 저렇게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본인에게는 심각한 불편이에요. 그런데 병원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아요.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아픈 사람들한테서 다른 병이라도 얻게 될까 두렵기도 하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야간진료 시간에 병원에 가는 겁니다. 원래는 응급환자들을 위해 열어 놓은 것이지만 막상 가보니 응급환자도 거의 없고 당연히 일반 환자도 없어 금방 진료를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거죠. 원칙적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안자이 히로시는 '뭐 이정도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야간진료 시간에만 병원에 갑니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조금씩 흠결을 가지고 있고 슬쩍슬쩍 반칙을 저지르곤 합니다. 나름의 이유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크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도 없어요. 오히려 스스로 정당하다고 여기기도 하죠. 이런 인물들이 열에서 스무 멍쯤 나와 각자의 삶을 보여주는데요, 그 안에서 나의 모습, 내 가족의 모습, 동료의 모습, 이웃의 모습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도입부에서 소설의 중심이 되는 사건, 즉 두 살 난 아이의 죽음을 미리 밝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독자는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인물들의 일상을 관찰하게 됩니다. 처음엔 '이게 그 사건이랑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하는 좀 막막한 기분이 들지만 차근차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기존에 나왔던 인물은 구체성을 쌓아가면서 '그 사건'을 향해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요. 마침내 그 일이 터졌을 땐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 탄식하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사건의 피해자인 아이의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만 모를 뿐 독자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그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보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 후반부를 읽다 보면 악의는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이 비극의 발생에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이 죽은 아이의 아버지 앞에서 보이는 모습에서 나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발견하게 돼요. 씁쓸하면서도 그들을 마냥 비난하기는 어려운, 당혹스러운 감정이 듭니다.


사소하고 평범한 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이 조금씩 쌓이고 어긋나고 얽히면서 결국 한 아이를 죽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긴 해요. 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 아주 없진 않으니 그 점은 눈감아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흠을 잡기 보다는 작품 속 인물들의 언행을 보며 부끄러웠던 나의 과거와 마주하고 잘못을 반성하며 내가 상처줬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비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 작품을 감상하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구체적인 줄거리를 알아도 감상에 큰 지장은 없는 작품이지만 전혀 모르고 읽는 것과 다 알고 읽는 것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을 터라 스토리를 생략한 채 글을 쓰고 보니 좀 모호해졌네요. 숨막히는 긴장감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없더라도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드러내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 볼 만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