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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

4회 영화토론회 <그을린 사랑> 정리

참여해주신 분들 - 동요님, 그땐나와함께님, 인생다그렇지님, 조제님, 몽룡이누나님


<그을린 사랑>의 원제는 <앵쌩디>(Incendies)입니다. 의미를 쫓자면 폭발 혹은 폭발적인 감정의 표출과 그런 식의 움직임(요컨대 대규모 운동)을 뜻합니다. 먼저 2011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그을린>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던 영화입니다. 혹자는 이 <그을린>이라는 제목이 원제인 <앵쌩디>의 이미지를 잘 살린 제목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번안제가 잘 안나오는 요새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번안제를 택한 제목이기도 하고요.


<그을린 사랑>에 있어서 큰 특징 중 하나는 존재가 제거되어 있는 배경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영화를 봄으로써 종교 분쟁이 한창인 중동의 어느 국가를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대체로 레바논으로 상정하고 보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실제 존재하는 지명은 아니며, 실존하는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토론회는 일단, 이 이유에 대해서 먼저 추적해봤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특정 국가(예를 들면 레바논)으로 설정할 경우 그들에 의해 뭇매(?)를 맞게 되기 위해 회피하기 위함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주인공 나왈의 개인사에 더 집중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배경이 삭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의견들은 어떤 관점에서는 충돌하고 자연스럽게 이전되기도 하였죠. 그리고 모두 수긍하게 되는 ‘배경을 지움으로써 특정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충돌지점은 굉장히 격하고 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중동의 어느 국가에서는 종교라는 각자의 믿음에 의해서 생긴 고통스러운 현실이죠. 하지만 이 이야기를 실존하는 어떤 지명의 실재 사건으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고통이 이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려는 듯 싶습니다. 그래서 토론회에서는 영화 내부의 진짜 연유가 되는 ‘종교’에도 눈을 돌려봤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종교에 의한 균열은 아픈 현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에 대한 극단적인 비판이 숨어있지도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저 종교라는 배경이 현실을 만들었다는 설정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죠. 만약 이것을 종교가 아닌 이상이나 이념이라고 하여도 이야기는 성립할 수 있게 됩니다. 그저 현재 지구상 어디선가 가장 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을 모티브로 삼았을 뿐이죠. 이름도 없는 이곳의,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배경 아닐까요?


이런 배경 아래에서 이야기가 마치 조각난 것처럼 진행됩니다. 인명과 지명, 혹은 주요 인물들의 존재를 제목으로 삼는 10개의 챕터는 칼로 자르듯 깔끔하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진행도 과거와 현재가 혼란스럽게 이어집니다. 과거를 말하는 캐릭터 나왈과 현재를 진행하는 그녀의 딸 잔느는 복장과 헤어스타일마저 똑같아서 그 혼란을 더 배가시킵니다. 하지만 이런 조각난 듯한 현실들은 뒤로 갈수록 하나로 봉합됩니다. 되려 앞에서 만들어낸 의도적인 혼란 때문에 뒤쪽의 봉합이 더욱 더 촘촘해 보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구성에 의도가 있다면, 이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려고 하는 그 ‘봉합’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의해서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마주하는 쌍둥이 남매의 모습을 보면, 때로는 나왈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진실을 전해듣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한 니하드의 모습 또한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나왈을 꼭 야속하게만 봐야할까요. 역사와 분쟁은 언제나 크고 작은 이변들을 만듭니다. 그 안에서 개인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수많은 비극들을 만나며 힘들어 하게 됩니다. 나왈은 쌍둥이 남매에게 전하는 편지에 ‘이해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설령 이 진실이 너무나 무겁고 힘들게 만들더라도, 그것을 알고 기억할 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위에서 말했던 두가지 명제가 이럴 때 떠오릅니다. 첫째는 이것은 정확한 배경이 없는,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둘째는 그런 이야기를 어지럽게, 하지만 천천히 봉합해나갑니다.

진실을 아는 것을 피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어디에 앉아서 그 결과를 예측하여서도 안됩니다. 잔느가 여정을 떠나기 전, 다레쉬에서 만난 수학교수는 잔느에게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개의 다리’에 관한 명제를 말합니다. 일곱 개의 다리를 한번씩만 건너서 모두 건널수 있는가에 대한 명제죠. 이 해답은 직접 그 다리위를 건너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픈 진실 또한 자신이 직접 두 다리로 뛰어서 직면했을 때, 아픔을 봉합하고 이해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그 외에도 어린 니하드가 등장하는 저격장면에 관한 이야기나 몇 번에 걸쳐서 나오는 수영장 장면등의 의미에 대해서도 탐구해 봤습니다. 생각보다 계산적으로 의미를 꼼꼼하게 숨겨놓은 부분들이 많아서 즐거운 토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토론회가 뽑은 명장면 -

인생다그렇지님이 뽑아주신 두 장면입니다.

오프닝 장면입니다. 화면을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으로 영화가 강렬할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몽룡이누나님께서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마지막, 니하드가 나왈의 무덤앞에 서 있는 장면입니다. 영화의 모든 내용을 압축하고 있는 장면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땐나와함께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국민당 당원을 암살하는 나왈의 모습입니다. 사람을 죽이는데에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나왈의 눈빛이 인상적이라고 하셨습니다.

동요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초반에, 진실을 알게 되어 선베드에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나왈의 모습입니다. 이 장면이 있기 때문에 후반의 충격이 배가되셨다고 합니다.


조제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버스에서 아이를 살 수 있도록 빼내주는 나왈의 모습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신도 이렇게 행동할 것 같아서 어떤 동질감이 드셨다고 합니다

제가 뽑은 장면입니다.

조제님께서 뽑아주신 장면의 바로 뒤입니다. 이렇게라도 아이를 구하게 되어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 토론회의 한줄평 -

(점수는 5점 만점입니다.)

4 : 잘 봤지만 만점짜리 영화는 아니다.

4.5 : 용서 전에 진실을

4.5 : 전쟁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가족애

4.8 : 1+1=1

4.7 : 미스테리한 구성의 영화

4 : 그을음의 근원


- 토론회가 추천하는 같이 보면 좋은 작품 -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영화) : 영화가 가지고 있는 반전, 그리고 그 기반에 가족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함이 있습니다.

<차이나 타운>(영화) : 강렬한 반전과 그 뒷배경에서 비슷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바쉬르와 왈츠를>(영화) : 레바논 내전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이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분쟁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강력한 반전이 있고 미스테리한 구성을 하고 있지만 이야기 거리는 그다지 많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영화를 세심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정리문에 들어가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 점이 참 안타깝네요. 함께 이야기 나눠주신 분들게 모두 감사드립니다.